
사라지지 않을 우리 - 2026 김민 개인전 <Rebirth: Becoming>에 부쳐 -
사라지지 않을 우리
- 2026 김민 개인전 <Rebirth: Becoming>에 부쳐 -
이 재 걸 ∣ 미술비평
김민은 생명의 영원한 흐름과 그 시적(詩的) 진실을 화면에 담아낸다. 작가에게 있어 가공되지 않은 광목과 린넨을 지지체 삼아 코코넛 오일, 아보카도 오일, 돌가루와 같은 자연적 매질을 사용하는 제작 공정은 형상과 질료가 상호 침투하며 자연의 능동적인 역사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최근 연작인 <흐르도록 주어지는 것>과 <두 개의 시간>은 그가 그간 견지해온 회화적 방식 위에 ‘입자-파동-빛’의 동시성과 생명의 능동적 의지인 ‘엘랑 비탈(élan vital)’을 극대화하는 형국이다. 삶과 죽음, 찰나와 영원, 미시(微示)와 거시(巨視), 추상과 구상은 그렇게 화면 속에서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초(超)연결적 질서로 수렴한다. 이러한 ‘동시성’과 엘랑 비탈의 초월적인 심미성은 <Diary of the Soul>과 <Rebirth> 연작에서 절정에 이르는데, 이 작품들에서 식물의 줄기이자 신경망이며 빛의 잔상이기도 한 유연한 선조(線條)들은 화면 전체를 부드럽게 휘돌고, 분홍과 황색, 연두와 보랏빛은 마치 성운(星雲)처럼 신비롭게 포개진다. 이제 색채는 해방되고 붓은 활기를 띠며 시간과 공간은 개방되었다. 그렇기에 작가가 말하는 ‘재생(Rebirth)’은 극적인 부활과 같은 신화적, 서사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이미 다른 형식, 다른 차원으로 지속되고 있었음을 깨닫는 발견의 여정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흙, 불, 물, 공기라는 원소적 이미지들을 통해 ‘질료적 상상력’을 사유한다. 이 상상력의 참된 동력은 도형과 윤곽 같은 죽은 형식이 아니라, 촉감과 온도, 무게와 점성, 저항과 흐름 같은 질료적 감각의 살아있는 성질에서 솟아난다. 이처럼 상상력이 질료적 감각에 의해 점화된다고 할 때, 바슐라르가 호출하는 특유의 정신 상태가 있다. 그가 ‘몽상(rêverie)’이라 명명한 특별한 상태가 바로 그것인데, 몽상은 잠잘 때 의지와 무관하게 휩쓸리는 꿈(rêve)과 엄격히 구분되는 것으로, 물질과의 접촉 속에서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민의 회화는 모든 사건과 형상 내면에 잠재해 있는 존재의 원초적인 속성들, 이를테면 밀도와 진동, 운동성과 강도(intensity)로 드러나는 순수한 힘의 전이, 그 정동(affect)적 차원으로 세계의 감각을 옮겨 놓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김민의 화면 위를 번져나가는 무수한 모듈들 역시 바슐라르가 말하는 ‘몽상적 둥긂(rondeur onirique)’과 무척 닮아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존재가 가장 자기다워지는 충만한 평온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영혼의 형상은 비로소 ‘둥글어’진다. 뾰족한 모서리가 없는 둥근 형상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하고, 흩어지려는 에너지를 안으로 모아주는 가장 근원적인 안식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민의 ‘둥긂’은 ‘원(圓)’ 혹은 ‘원형(圓形)’의 외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깊이에서 발견되는 ‘원(源)’과 ‘원형(原型)’으로서 강력한 미학적 당위성을 지닌다.
질료의 심연이 영혼이고, 영혼의 심연이 질료이다. 그렇게 식물은 빛이 되고, 빛은 곧 우리가 된다. 가장 작은 생명의 떨림 속에 우주가 있고, 그 큰 우주의 노래 속에 우리는 끝없는 생명에 참여한다. 작가는 대지와 영혼을 오가는 시적 몽상과 저 겹겹이 쌓인 둥근 원형(原型)들의 역량으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우리를 껴안는다. 식물적 사유에서 빛의 영원으로, 그리고 결국 영혼의 ‘살아있음’으로 향하게 하는 그의 회화 앞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의 형이상학적 비전을 새롭게 정초한다. ‘깊이’에 대한 상상, ‘영원’에 대한 경탄, ‘초(超)연결’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아름다움이요, ‘육(肉)’의 삶을 다한 이들을 향한 부단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했을 증언이다.